작가가 마지막 혼과 열정 쏟아부어 완성된 갤러리, 제주의 관광 명소로 우뚝 자리잡아

이경모 선생을 주제로 한 기획취재를 준비하면서 사진에 온 열정을 쏟은 또 한명의 사진작가를 알게 됐다. 

이 작가는 필름을 사기 위해 굶주린 배를 부여잡으며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고, 루게릭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굳어가는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제주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는 그가 오롯이 사랑한 제주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다. 

갤러리 두모악 입구.
갤러리 두모악 입구.
단층으로 구성된 갤러리 건물은 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건물 자제만으로도 예술적 감각이 묻어난다.
단층으로 구성된 갤러리 건물은 학교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건물 자제만으로도 예술적 감각이 묻어난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번지에 자리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폐교였던 삼달분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이기도 한 ‘두모악’은 김영갑 작가가 20년간 제주에 머물면서 제주도를 사랑한 댓가로 제주 곳곳을 사진에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평생 사진만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살다간 예술가의 애절함도 이곳에 배어있다.

갤러리 두모악의 첫 모습은 폐교를 활용해서인지 여느 시골학교 모습 그대로였다. 정겨운 토우 작품들이 있는 정원이 펼쳐지자 비로소 학교가 아닌 갤러리라는 느낌이 다가왔다.

야외 정원은 김영갑 작가가 투병 생활 중에서도 미술관을 찾는 분들을 위해 손수 만든 공간인데 이곳은 휴식과 명상을 할 수 있게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갤러리 건물 앞에 ‘배움의 옛터’라고 새겨진 돌이 눈이 띄는데 이곳이 이전에 학교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갤러리 건물은 단층으로 되어 있으며 학교건물을 새단장한 것이다. 리모델링한 건물이긴 하지만 그 자제만으로도 예술적 감각이 묻어난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총 2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하늘과 구름을 사진에 담은 ‘두모악관’과 바람과 오름을 사진에 담은 ‘하날오름관’이다. ‘두모악관’과 ‘하날오름관’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모습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제주의 속살을 감상 할 수 있다.

또 생전의 사무실에 마련된 ‘유품전시실’에는 그가 평소에 보던 책들, 그리고 평생을 함께해온 카메라가 전시돼 있으며, ‘영상실’에는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젊은 시절과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당시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갤러리 야외 정원은 잘가꿔진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사진은 목에 가메라를 건 돌하르방 모습.
갤러리 야외 정원은 잘가꿔진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사진은 목에 가메라를 건 돌하르방 모습.

■제주에 매료되고 사진에 미치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의 오름과 바다를 만나면서 제주 풍경에 매료됐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제주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1985년에는 아예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다.

김영갑은 지독한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제주도가 주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필름에 담고 기록하는 것이 그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홀로 필름에 미쳐 돌아다닐때에는 낯선 사람들이 간첩으로 오인해 경찰을 부르기도 했다.

김영갑은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들판에 자주 서 있었다. 바람을 느끼고 이해하지 않으면 제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바람이 빛에 부딪치며 가슴이 뭉클해 지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그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어 삽시간의 황홀을 선물하는 제주의 바람을 찍고 싶어했다. 결국 맨얼굴로 마주한 제주의 순간이 필름으로 기록됐다.

이는 모두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가 출간한 수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보면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 지독한 기다림으로 좋은 사진을 탄생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의 모든 사진들에는 작품명이 없다.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력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다고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위에서부터 김영갑 선생의 생전 작업실, 하날오름관 전시실.
위에서부터 김영갑 선생의 생전 작업실, 하날오름관 전시실.

■절망에서 안식을 찾다

김영갑은 언젠가부터 셔터를 누르는 데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구하려는 무렵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손 떨림과 허리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지만 그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났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전시관을 만들기에 열중하기 위해서다. 그는 당시 몸이 점점 굳어가더라도 무언가 할 일이 있다면 하루하루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했다. 

그는 마지막 혼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의 열정으로 인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게 됐다. 그 사이 그는 더 야위어 갔지만 갤러리가 완성되자 한라산 옛 이름을 붙여 갤러리를 완성했다.

투병생활을 한지 6년 만인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4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김영갑은 생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이라고 설파했다.

■김영갑, 섬에 영원히 남다

김영갑 작가는 이제 세상을 떠났어도 두목악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삶에 지치고 여유없는 일상에 쫒기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서 와서 느끼라고 손짓한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운영 중인 박훈일 관장은 “이땅에 영원히 살아야 할 후손들,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 어려운 예술가들,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많은 분들을 위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영원히 남아야 할 존재이자 이유이다”고 말한다.

현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제주를 사랑한 김영갑의 작품을 비롯해 필름 수만 점을 소장・전시되고 있다. 그의 치열했던 예술혼 덕분인지 이곳은 갤러리를 넘어 지친마음을 달래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내셔널 트러스트의 ‘잘 가꿔진 자연문화유산’과 한국관광공사의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등에 지정됐다. 또 제주 관광객 대상 ‘인상 깊은 관광지’ 1위에도 선정된 바 있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2014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고,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를 기리는 이들이 여전히 찾고 있다. 김영갑은 그가 사랑했던 제주, 그것도 자신이 손수 만든 두모악에 영원히 있다.

양재생 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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