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룡마을은 옛날 개룡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마을이름이 연유됐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김녕김씨 행적비, 개룡교, 마을정자나무 순이다.
개룡마을은 옛날 개룡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마을이름이 연유됐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김녕김씨 행적비, 개룡교, 마을정자나무 순이다.

개룡마을은 계족산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봉강면 마시마을을 지나 조령마을 가기 전 좌측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룡교를 건너야 하는데, 현재 개룡교 입구에는 전원 주택단지인 해랑마을이 조성돼 있다.

■개룡마을 유래

개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㫆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며내면에 속했다.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이 지역이 며내면 개룡리(開龍里)와 본사리(本寺里)에 속해 문헌상 처음으로 마을이름이 나타났다.

개룡마을은 1750년경 전주이씨(全州李氏)가 처음 입촌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며, 현재는 이・박・양・조씨가 고루 분포해 살고 있다.

개룡(開龍)이라는 마을 이름은 옛날 개룡사(開龍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다.

1872년에 제작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광양현지도에 의하면 이 당시 개룡사 부근에 본사리(本寺里)란 마을이 있었는데 그 이후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아 절이 없어지자 함께 마을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룡마을은 현재 신룡리에 속해 있는데, 신룡리(莘龍里)의 이름 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당시 개룡리(開龍里), 영수리(映水里), 양춘리(陽春里), 안치리(鞍峙里), 신촌리(莘村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면서 신촌(莘村)과 개룡(開龍)의 이름을 따서 신룡리(莘龍里)라 했다.

■개룡사지와 배맨바위

마을에 전해오는 개룡사지(開龍寺址)는 개룡마을 뒤편 골짜기, 즉 계족산의 동편 골짜기에 위치하는데 현재는 잡초만 무성할 뿐 그 흔적을 찾기 어렵고 단지 와편들만 산재해 있다. 

문헌인 ‘범우고(梵宇攷)’에 ‘개룡사 계족산’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것으로 보아 18세기에 개룡사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 더 이상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개룡사가 약 천여년 전에 융성했다고 전하며, 순천시 서면에 있는 고사(古寺)와 왕래가 잦았으나 식량관계로 승려들간에 불화가 잦아 화재가 나서 완전히 소실됐다고 한다.

또한 개룡마을에는 배맨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는데 몇천년 전에 홍수가 나서 배를 타고 가던 두 형제가 이곳 골짜기 바위에 배를 묶고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 바위를 당시 배를 맨 바위라는 의미에서 ‘배맨바위’로 불렀으며, 해발 500m의 중턱에 위치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 바위에는 조개껍질이 무수히 붙어 있고 그 주위 역시 조개껍질이 산재해 있다.

마을의 정자나무는 마을회관 정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팽나무 2그루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팽나무는 수령이 120년, 수고가 10m, 나무 둘레가 2.5m로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또 마을회관 바로 옆에는 김녕김씨 행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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