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暎亭(청영정)

                                             옥봉 백광훈

        천봉구름 말쑥하고 이슬은 데구루루

        오늘 밤 어디선가 봉황의 피리 소리

        누각 위 밝은 달빛은 나의 임의 마음일세.

        千峯雲作一江晴    風弄荷盤露有聲

        천봉운작일강청    풍롱하반로유성

        何處鳳笙今夜裏    翠樓明月玉人情

        하처봉생금야리    취루명월옥인정

조선의 시심 영상은 누정에서 싹트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한 수를 지어놓고 한시창을 했고, 3장 6구체로 바꾸어 시조창으로도 불렀다. 한시창과 시조창은 서로가 왔다 갔다 했다. 누가 누구랄 수도 없이 한량님네들 생활 거의 전부는 그랬다. 그래서 한시라고 하는 정형의 율격은 시조라는 정형시와 많이 닮은 형식을 띤다. 오늘 밤 어디서인가 봉황의 피리 소리 들리는데, 누각 위 밝은 달은 그 임의 마음일세 그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누각 위의 밝은 달은 그 임의 마음일세 그려(淸暎亭)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봉에 이는 구름에 강물은 맑은데 / 바람의 희롱에 연잎 치자 이슬 구르는 소리 나누나 // 오늘 밤 어디서인가 봉황의 피리 소리 들리는데 / 누각 위 밝은 달은 그 임의 마음일세 그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청영정에 올라서 보니]로 번역된다. 청영정은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부춘정에 있는 용호의 정자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시가 남다르게 많다. ‘別家(별가)’랄지 ‘還鄕路中(환향로중)’과 같은 시가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읽는 순간 금방 애향심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모시상에 대한 공감을 하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배산임수’라 했듯이 뒤는 산, 앞은 내가 흐르면서 너른 들판이 전개되는 부산뜰을 보는 순간 선경의 시상을 쏟아졌을 것 같다. 고향의 천봉에 이는 구름 위에 강물은 그지없이 맑은데, 한 바탕 부는 바람의 희롱에 연잎 치자 이슬 구르는 소리 나는구나 라고 했다. 연잎치자 구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고향의 내음이 진하게 묻어났던 모양이다.

 화자의 귀는 더욱 밝게 들려오면서 작은 잔영까지 비춰왔던 것 같다. 청영정을 찾은 오늘 밤도 어디서인가 봉황의 피리 소리가 들리는데, 누각 위 밝은 달은 그 임의 마음일세 그려 라는 서정의 시상을 한 움큼 쏟아내고 말았다. 최경창, 이달과 함께 삼당시인이란 별칭을 받을 만큼 시정성이 풍부했던 시인이고 보면 상상의 나래는 더 커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천봉 구름 강물 맑고 이슬 굴러 소리나네, 봉황의 피리 소리 듣고 밝은 달은 임의 마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으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아버지는 부사과를 지낸 백세인, 어머니는 광산 김씨이며, <관서별곡>으로 유명한 백광홍의 아우다. 어린 시절부터 백형 백광홍의 계도를 많이 받았으며 이항, 이후백 등에게도 수학했으며, 박순의 문인이다.

【한자와 어구】

淸暎亭: 장흥 부산 부춘정, 용호의 정자. 千峯: 많은 봉우리. 雲作: 구름을 짓다. 一江晴: 강이 맑다. 風弄: 바람이 희롱하다. 荷盤: 연잎 소반. 露有聲: 이슬이 소리를 내다. // 何處: 어느 곳에 鳳笙: 봉의 생황. 今夜裏: 오늘밤 안으로. 翠樓: 비취 누각. 明月: 밝은 달. 玉人: 임을 가르침. 情: 정.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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