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마을은 비봉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마을로 상봉마을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백운저수지, 성산박씨 종각, 보수당, 이준모 효행기적비 순이다.
하봉마을은 비봉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마을로 상봉마을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백운저수지, 성산박씨 종각, 보수당, 이준모 효행기적비 순이다.

하봉마을은 백운산 중봉의 하나로 꼽히는 비봉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마을로 봉강면사무소 소재지인 상봉마을과 맞닿아 있다. 마을 앞쪽에 백운저수지가 있어 심심한 농촌 풍경에 운치를 더해 주며, 마을 안쪽은 당저마을과도 인접해 있다. 당저마을과의 구분은 당저교를 기점으로 한다.

■마을의 형성 및 유래

하봉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며내리(㫆內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며내면(㫆內面)에 속했고 1872년 광양현 지도에는 며내면 하봉리(下鳳里)로 표시됐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을 며내면이라고 했는데 마을이 내우산 안쪽에 있다는 이유에서 불리게 됐다. 내우산은 백운저수지 앞쪽 우산리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산이다.

하봉마을은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봉강면 하봉리였으며,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 행정구역 개편 후에는 봉강면 봉당리(鳳堂里)에 속했다.

마을 형성은 1530년경에 김해허씨 허석주(許碩柱)가 처음 입촌하면서라고 전하고 있다. 

마을 동쪽은 화전등(花田嶝), 서쪽은 옥녀봉(玉女峰), 앞으로는 백운저수지가 있는데, 이는 마을이름과 관련이 있다. 

마을이름은 비봉산(飛鳳山) 기슭의 마을 중 제일 아래쪽에 위치한다 하여 하봉(下鳳)이라 했다. 봉당리 지역 내 자연마을 지명은 대부분 비봉산(飛鳳山)을 중심으로 연유된 이름으로 지어졌다.

조선시대 중엽에는 마을 서쪽에 사창(社倉)이 있었으며 사창서재(社倉書齋)가 세워져 인근 교육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사라진 조양마을과 특이사항

하봉마을에는 백운저수지 축조로 지금은 사라진 조양(朝陽)마을이 있었다. 백운저수지 축조공사로 인해 1959년에 수몰지구가 발표되고 1961년에 저수지가 완성됐는데, 이 당시 토점의 20호, 작정의 38호, 당저(堂底)마을의 36호가 수몰됐는데, 이때 조양(朝陽)마을도 25호가 수몰 됐다.

조양마을 출신인 중 박현모(朴賢模 1880~1963)란 사람이 있다. 그는 오직 독서만을 즐겨하며 성현문집을 탐독하고 오경오서(五書五經)에 능통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박현모는 양파정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유학과 시문에 평생을 바쳤고, 유교집으로 완재집(緩齋集)을 남기는 한편 희양십경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또 이 마을에는 처사 이준모 효행기적비가 건립돼 있다. 

이준모 효행기적비는 광양농협 봉강지점 창고 옆면에 마련돼 있다.

이준모는 효행이 바르고 학문에 전념해 후학을 훈도하며 덕성을 함양하며 제자들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이 마을 중앙에 마련된 노인정은 봉수당(鳳壽堂)이란 이름으로 그 위세를 뽐내고 있으며, 마을 동쪽에는 김해허씨의 종각(宗閣)인 영모재(永慕齋)가, 서쪽에는 상산박씨의 종각인 지공재(持恭齋)가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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