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峰山齋(고봉산재)

                                                고죽 최경창

        고을성곽 없어지고 산속재실 남았는데

        아전들은 여기저기 쓸쓸하게 흩어지고

        물 건너 다듬이 소리 처량하게 들리네.

        古郡無城郭    山齋有樹林

        고군무성곽    산재유수림

        蕭條人吏散    隔水搗寒砧

        소조인리산    격수도한침

충북 청남대가 있었던 고봉산 제실은 흥취를 아는 선비들이 발길을 돌려 찾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산세가 수려하여 자연을 벗 삼아 시상에 취한 선비라면 한 번쯤 찾아 밟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온전하게 남아있다면 좋으련만 자취만 남아있을 뿐 흔적조차 없다면 더 없이 허망하기 그지 없었으리라. 드나들던 아전들은 쓸쓸하게 어디론지 흩어지고 없는데, 물 건너에는 처량한 다듬잇소리만 들려온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물 건너엔 처량한 다듬이 소리만 들려오는구나(高峰山齋)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옛 고을 성곽은 이제 없어졌는데 / 산속 재실에는 나무만이 남아 있구나 // 드나들던 아전들은 쓸쓸하게 어디론지 흩어지고 없는데 / 물 건너에는 처량한 다듬잇 소리만이 들려오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고봉산 재실를 둘러보고]로 번역된다. 고봉산은 대청호가 보이고 일출을 볼 수 있는 충북의 광광지로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이다. 요즈음 청남대가 개방이 되어 대통령들이 다녀갔던 흔적이랄지 선거용 벽보들이 붙어 있어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을 자아내지만, 시인이 살았던 그 시절에야 어디 그런 정경까지야 볼 수 있었겠는가. 시인을 고봉산에 있는 재실을 찾았던 모양이다.

 시인의 시심은 신라군과 백제군이 밀고 밀리는 전장터에서 적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쌓아 올린 성곽을 보면서 시상을 일으켰다. 옛 고을 성곽은 없어지고 없는데, 산속 재실에는 나무 몇그루만이 남아 있구나는 상상이다. 철원에 가면 철의 삼각지대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고, 태봉국을 세웠다는 궁예의 옛성터를 보면 그 때의 화려했던 역사며 피비릿내 나는 전장의 아픔과 흔적을 느낀다.

 어렇듯 화자는 제실에 들려 또 다른 회상에 젖는다. 드나들던 아전들은 쓸쓸하게 어디론지 흩어지고 없는데, 물 건너에는 처량한 다듬잇 소리만이 들려오는구나 라고 했다. 그 때는 다듬잇소리나마 들렸겠지만 지금은 더욱 황량하기 그지없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옛고을 성곽 없고 산 속 재실 남아있어, 아전들은 흩어지고 다듬잇 소리 들려오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으로 조선중기의 문인이다. 최수인의 아들로 내사령 최충의 18대 후손이며, 최자의 13대손이다. 박순 문인으로 젊어서는 백광훈, 이후백과 함께 양응정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한다. 학문과 문장에 능하여서 조선 중기 팔문장의 하나로 일려진다.

【한자와 어구】

古郡: 옛고을. 無城郭: 성곽이 없다. 山齋: 산 속에 있는 재실. 有樹林: 나무만이 있다. // 蕭: 소소하다. 쓸쓸하다. 條: 읖조리다. (아전들이) 고개를 숙이다. 人吏: 아전들. 散: 흩어지다. 隔水: 저쪽의 물 건너. 搗砧: 다듬잇 소리. 운자와 평측 때문에 도치(倒置)가 되었음. 寒: 차갑다. 쓸쓸하다.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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