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곡마을은 예부터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오는 광양 12실 중의 하나로 석실이라고 불렸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유래 조형물, 마을회관, 석곡교, 마을정자 순이다.
석곡마을은 예부터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오는 광양 12실 중의 하나로 석실이라고 불렸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마을유래 조형물, 마을회관, 석곡교, 마을정자 순이다.

석곡마을은 예부터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오는 광양12실(室) 중의 하나로 백운산에서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두고 상평마을을 마주하고 있다. 옥룡면사무소와 옥룡우체국이 가깝고 동천 위를 지나는 석곡교를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 

석곡교 앞에는 마을을 알리는 이정표와 마을을 설명하는 조형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석실(石室)과 석실(席室)

석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옥룡면 석곡촌(石谷村)이라 했다.

마을의 정확한 마을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상 마을이름이 나타나는 기록을 참고하면 마을형성 연대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석곡은 옥동(안터) 동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로 이곳에 돌이 많아 예부터 주민들이 돌로 집을 짓고 살아서 마을이름을 석실(石室)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옥동마을 뒷산 옥녀봉의 옥녀가 앉은 좌석이라고 하여 석실(席室)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부터 520여 년 전에 석곡(石谷)으로 개칭했다고 전한다.

구전되는 전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에 용이 살았다는 용소(龍沼)가 있었고 이곳을 ‘용소거리’라 했으며, 지금은 이 소(沼)가 메워져 사라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여름철이면 많은 부락민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즐기곤 했다고 전한다.

또 마을에는 수령 500여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해마다 당산제를 지내왔으나 1960년대에 화재로 당산나무가 소실됐고, 40여 년 전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다시 심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정지명 유래

석곡마을은 ‘마당재’라 불리는 유서깊은 산고개가 있다. 

이 마당재는 ‘수평동재’라고도 하며 석곡마을의 큰골을 지나 옥곡 수평마을로 오가는 산고개였다. 

1970년대까지 이 길을 통해 옥곡면 수평, 진상면 웅동과 어치·비촌 그리고 다압면 주민들이 광양5일장을 오갈 때 이용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옥곡중학교가 설립되기 전에는 지역 학생들이 광양중학교로 통학했다고 한다.

마당재 아래에 위치한 약 1만5천평의 넓은 초원지대를 ‘마장터’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서 말을 먹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갈받등’은 마을 뒤 깊은 곳에 있는 산등으로 예부터 이 지역이 칡(葛)이 많다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또 마을 뒤 당산등을 지나 큰골과 작은골의 갈림길에 위치한 널찍한 공터가 있는데 이를 ‘어구’라고 했으며, 옛날 옥곡, 진상, 다압 주민들과 나무꾼들의 쉼터였다고 전한다.

어구 건너 음달쪽에 위치한 골짜기는 무시밭골이라 한다. 옛날 이 지역에 무밭이 있었는데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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