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마을은 옛날 ‘제실’이라고 불리던 마을로 외계와 내계가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계곡교, 마을정자, 계곡저수지, 마을회관, 표지석 순이다.
계곡마을은 옛날 ‘제실’이라고 불리던 마을로 외계와 내계가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계곡교, 마을정자, 계곡저수지, 마을회관, 표지석 순이다.

계곡마을은 광양읍 우산리에 속한 마을로 위치상으로는 옥룡 은죽마을과 맞닿아 있다. 광양 동천이 마을 앞을 지나고 있어 계곡교를 통해 마을로 들어 설 수 있다. 마을 안쪽에는 1943년 준공된 계곡저수지가 있다.

■마을이름 및 지명 유래

계곡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玉龍面)에 속했다. 1789년 호구총수에는 옥룡면 죽산촌(竹山村)지역으로 추정된다.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인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광양군 옥룡면 계곡리(桂谷里)라 하여 문헌상 마을이름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행정구역 개편 후인 1917년 조선면리동일람에는 옥룡면 운곡리(雲谷里)에 속했다.

계곡마을 형성시기는 17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진양정씨(晋陽鄭氏)가 처음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한다.

마을이름을 이전에는 ‘제실’이라고 불러왔으나 언제부터 ‘계곡(桂谷)’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을이름이 제실로 불리면서 마을 입구에 형성된 마을을 ‘외계(外桂)’ 또는 ‘바깥제실’이라고 했다. 이 바깥제실은 계곡마을에서 제일 먼저 입촌했다고 전해진다. 위치상으로 제실 안쪽에 있는 마을을 내계(內桂)라고 하는데 ‘안제실’에 해당한다. 내계에는 계수나물골이 있는데 내계의 ‘계(桂)’자가 계수나무에 해당한다.

안제실 서쪽에서는 광양읍내가 바라보이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 지역을 망동(望洞)으로 부르고 있다. 

■서천일과 암연정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전라도 광양현 누정편에는 암연정(岩淵亭)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암연정(岩淵亭)은 계곡마을 지역인 광양읍 동천변 널따란 바위 위에 있었던 정자다. 조선시대 중종 때 이 마을 출신 서천일(徐千鎰, 1483~)이 군자감 주부(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암연정(岩淵亭)이란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고 전한다.

서일천은 서극수의 아들로 기묘사학사(己卯四學士)로 지평・헌납・정랑・사인 등의 청요직을 두루 역임했던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의 처남이기도 하다.

서천일은 지역 선비들과 어울려 시문을 논하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곳의 경치를 읊은 시 여러 수가 우리고을 향토지에 전하고 있다. 많은 저술을 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유실됐고 현재는 상현록(尙賢錄), 문인록(門人錄) 등 두 책만이 전할 뿐이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암연정을 서천일의 고손인 월파(月波) 서진귀(徐盡龜)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이곳 바위 아래 맑은 물이 흐르고 기묘한 바위가 있어 좋은 경치를 이루었지만 40여년 전 이곳을 지나는 남해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바위가 훼손되어 옛 정자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다만 암연정 유허비(岩淵亭 遺墟碑)만 하평마을 옥평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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