郎非牽牛(낭비견우)

                                              숙원 이옥봉

        세숫대야 거울삼아 얼굴을 씻어내며

        세숫물을 기름삼아 머리를 빗어내나

        이 몸이 직녀 아닌데 어찌하여 견우리오.

        洗面盆爲鏡    梳頭水作油

        세면분위경    소두수작유

        妾身非織女    郎豈是牽牛

        첩신비직녀    낭기시견우

당대 판서대감 작은 마님에게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산지기 아내가 있었다. 남편이 소를 도둑질한 누명을 쓰고 관가에 갇혀있다고 글 한 장을 써달라고 애원했었다. ‘그것 못할 것도 없다’면서 즉석에서 시 한 수를 써주었다. 이 시를 받아본 파주현감은 깜짝 놀라며 그녀의 남편을 풀어주었다. 이 시를 지은 사람이 저헌 대감의 작은 마님이란 사실이 대감께 알려져 소박을 맞고 쫓겨났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여인의 운명까지 달리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낭군이 어찌 견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郎非牽牛)로 제목을 붙인 오언절구다. 작가는 숙원(淑媛) 이옥봉(李玉峰)으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신첩은) 세숫대야를 거울로 삼아 얼굴을 씻으면서 살고 / 물을 기름 삼아 머리를 빗질하며 사옵니다 // 그러기 때문에 이 몸은 정녕 직녀가 아니옵거늘 / 제 낭군이 어찌 견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낭군은 견우가 아닙니다]로 번역된다. 옥봉은 시를 짓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조원의 첩이 되어 20여년을 행복하게 살았다. 하루는 조원 집안 산지기 아내가 찾아와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했다. 남편이 소도둑의 누명을 쓰고 관가에 잡혀갔으니 억울함을 풀어 줄 글 한 편을 써달라고 간청했다. 산지기 부인 말을 들으니 향리의 수탈이 분명했다. 옥봉은 대뜸 관할 파주목사에게 시 한편을 써주었다.

 시인은 ‘세숫대야 물로 거울을 삼고, 그 물로 기름 삼아 바르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처지인데, 산지기의 부인인 자신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직녀가 아닐진데, 어찌 낭군이 소를 끌고 가는 견우이겠습니까?’라는 뜻을 담았던 시문이다.

 화자는 한갓 산지기 신세일 뿐인데 엄감생신 소를 끌고 갈 리는 없다는 자기 항변이었다. 산지기는 소를 훔치는 도둑이 아니라는 기발한 내용을 담는다. 파주 목사는 탄복하여 산지기를 풀어주었다. 이로 인해 옥봉의 소문이 자자하여 남편과의 약속을 어겼다 하여 소박을 맞고 쫓겨난 신세가 된 시문으로 이른바 필화사건의 원인인 되었던 일화로 인구에 회자된 작품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세숫대야 거울 삼고 물기름 빗질한데, 이 몸 직녀 아니거늘 견우 아닌 제 낭군인데’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이옥봉(李玉峰:?~?)으로 여류시인이다. 조선중기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로, 어려서 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했다 한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학식과 인품이 곧은 조원의 소실이 되었다.

【한자와 어구】

洗面盆: 세숫대야로 얼굴를 씻다. 평측과 운자 때문에 도차가 됨. 爲鏡: 거울을 삼다. 거울로 여기다. 梳頭: 머리카락을 빗질하다. 水作油: 몰을 기름으로 삼아 짓다. // 妾身: 첩. 흔히 ‘신첩’이라고 함. 여인 자신을 가리킴. 非織女: 직녀가 아니다. 郎: 낭군. 남편. 豈: 어찌. 是: 이다. 牽牛: 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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