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의 주둔지로 사용됐던 광양서초등학교의 현재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광양서초등학교.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국용역 보고서’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의 주둔지로 사용됐던 광양서초등학교의 현재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광양서초등학교.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국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숲샘길 29에 소재한 광양서초등학교는 여순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공간이다.

여수·순천10·19사건의 봉기군을 진압하기 위해 진주한 토벌군이 주로 이곳에 본부를 두고 백운산 지역에서 토벌 작전을 수행했다. 

15연대 2대대 7중대원 허모씨(당시 21세)는 광양서국민학교에 주둔하면서 백운산 토벌작전에 참여했다.

허씨는 광양에서 “직접 봉기군 가담 혐의자를 잡아서 총살한 적이 있다”며, “총살 시 조사나 재판과정은 없었고, 연대장 지시를 받아 실행했다”고 진술했다. 

1949년 9월 16일, 빨치산의 광양읍 습격 당시 광양서국민학교에 본부를 두고 있던 제15연대 1대대가 공격을 받았다. 

15연대 1대대 2중대 김모씨는 ‘1949년 9월 16일 광양읍 습격사건’ 당시 광양서국민학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아군 피해가 컸다. 이후 봉기군이나 그 협조자를 잡으면 유치장에 가두고 상부 지시를 받아 즉결처분해, 머리를 잘라서 광양경찰서 앞 붉은 벽돌로 된 벽에 걸어놨다”고 진술했다.

1951년 1월 14일에도 광양읍에 대한 빨치산의 공격이 있었다. 당시 광양서국민학교는 진압군의 주둔지로 빨치산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광양서초등학교가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 부대의 주둔지 였다는 사실과 빨치산 습격사건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안내표지판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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