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양경찰서는 현재 매일시장 주차장으로 활동되고 있다.(사진 위)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옛 광양경찰서 인근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옛 광양경찰서는 현재 매일시장 주차장으로 활동되고 있다.(사진 위)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옛 광양경찰서 인근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읍내리 227-1는 옛 광양경찰서가 있었던 자리로 여순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의 공간이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광양경찰서가 문을 연 후 1999년 목성리 청사로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서 업무를 보았는데 현재는 광양매일시장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1945년 8월 16일 광양의 지도자들이 모여 해방 축하 군민대회를 준비하기도 했다.

여순사건과 관련해서는 주요한 3번의 사건이 발생했다. 

1차는 1948년 10월 20일 광양경찰서 경찰 1개 중대 병력이 여수 14연대 봉기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순천으로 출동했다가 생목리 고개에서 봉기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3~4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이에 격분한 경찰들은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좌익 혐의자 27명을 덕례리 반송재 너머 주령골 입구 도로변으로 끌고 가 집단 총살했다.

2차는 1949년 9월 16일, 새벽 빨치산 약 150여 명이 광양읍내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해 광양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가 불에 탔다. 이때 경찰 9명과 군인 20명이 사망했다. 광양경찰서는 빨치산 토벌작전의 주요 거점이 됐고, 6·25전쟁 시기에는 인민위원회 내무서로 사용됐다. 

3차는 빨치산이 철수한 후 경찰은 광양읍을 비롯한 각 면에서 좌익에 협조했던 주민들을 색출, 100여 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구산리 우두마을, 덕례리 반송재, 사곡리 솔티재, 순천시 해룡면 검단재, 서면 구랑실재 등에서 살해했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여수·순천10·19사건 당시 백운산 빨치산 토벌 거점이자, 좌익 혐의자들을 취조, 유치하고 인근에서 학살했던 광양경찰서가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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