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到穩城(도온성) 

 

                                             농포 정문부

        만리성에 칼 집고 용봉 굽고 고래 회쳐

        저 푸른 바닷물을 한 잔의 술을 삼아

        마음의 가슴 속에다 채우어서 부어볼까.

        倚劒登臨萬里城    烹龍炮鳳膾長鯨

        의검등림만리성    팽룡포봉회장경

        滄溟水作一杯酒    倒向將軍胸裡傾

        창명수작일배주    도향장군흉리경

우리 선현들이 쓴 시를 읽으면 큰 기상이 숨어있음을 발견한다. 백두산에 칼을 갈고, 두만강 물에 말을 먹이겠다는 시도 그랬고, 소나무현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시도 그랬다. 본 시에서는 장검을 딛고 만리성에 오르고 용을 삶고 봉을 구으며 고래로 회를 친다고 했다. 사내 대장부라면 이만한 이상과 포부쯤을 가슴이 품고 있어야되지 않겠는가. 저 푸른 바닷물을 한 잔 술을 삼았다가 / 장군의 기개를 향해 이 가슴에 부어보리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장군 기개 향하는데 이르러 이 가슴에 부어보리라(到穩城)라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 1624)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장검에 의지하면서 만리성에 올라서 보니 / 용을 삶고, 봉을 구우며, 고래로 회를 쳐서 먹으면서 // 저 푸른 바닷물을 한 잔 술을 삼았다가 / 장군의 기개를 향하는데 이르러 이 가슴 속에 부어보리]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온성이 올라서서]로 번역된다. 임진왜란 중 현직관료로서 의병활동을 펼쳤던 시인 정문부의 작품이다. 성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 순간 분출된 격정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거대한 파도에 압도당하지 않고 제압하고자 하는 호기를 본다. 영흥(永興) 부사를 거쳐 온성(穩城)으로 부임했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은 온성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잔 술로 들이키겠다는 호탕한 표현으로 기개를 드러낸다. 특히 ‘장경(長鯨)’은 ‘거구(巨寇)’를 비유하는 시어로, 당시 전쟁을 초래하여 분탕질을 치고 있던 도이(島夷) 왜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러한 고래를 회쳐 안주로 삼고 횡포한 바다 자체를 한 잔 술로 들이마시겠다고 호언하는 것은 왜적의 소탕을 자신하는 장수로서의 담대한 기개와 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왜적과 대치한 현실적 상황과 실전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종군자의 패기 넘치는 발언으로서 격앙된 시인의 심장박동이 들릴 듯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비전시 상황에서 상상력만으로는 갖추기 어려운 것으로 읽는이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하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만리성에 올라보니 용을 삶고 고래 회로, 바닷물을 잔 술 삼아 장군 기개 부어보리’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임진왜란 때 회령의 국경인 등이 반란을 일으켜 적군에 투항하자 의병대장이 되어 경성을 수복, 회령으로 진격해 두 왕자를 왜군에게 넘겨준 국경인의 숙부 세필을 죽이고 반란을 평정했다. 저서로 <농포집>이 있다.

【한자와 어구】

倚劒: 칼의 의지하다. 登臨: 임하여 오르다. 萬里城: 만리성. 높은 성. 烹龍: 용을 삶다. 炮鳳: 봉을 굽다. 膾長鯨: 긴 고래를 회 치다. // 滄溟水: 푸르고 푸른 바닷물. 作: 삼다. 만들다. 一杯酒: 한 잔 술. 倒向: 향하는데 이르다. 將軍: 장군. 장군의 기개. 胸裡傾: 가슴 속에 기울다. 한 잔 술을 시원하게 마시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