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 우두마을 앞 당산나무 앞 개울가는 1949년 9월, 민간인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현재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읍 우두마을 앞 당산나무 앞 개울가는 1949년 9월, 민간인 집단학살이 자행된 곳이다. 현재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구산리 576 일원 우두마을(쇠머리)은 여순사건과 관련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장소다. 장소를 구체화하면 우두마을 당산나무 앞 도로변 개울가가 된다.

광양읍에서 봉강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위치한 우두마을은 소가 엎드린 모양 지형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양읍 습격사건 직후인 1949년 9월 17일, 광양경찰서 경찰은 주민 약 40명을 광양읍사무소 광장 앞에 집합시킨 후 이곳 우두마을(쇠머리)로 데려와 집단 사살했다. 백운제 저수지가 생기기 전 지형상 가장 낮은 곳에 사람들을 4열로 세워놓고 당산나무 쪽에서 총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 진상면 비평리 탄치마을 이은실(28세)은 당숙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서금식(19세)은 이은실의 친구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다가 희생됐다. 

옥룡면 지서에서 야경 10명을 통솔하는 야경 조장이었던 허필석(23세)은 빨치산을 피해 읍내로 내려와 살다가 경찰에 연행돼 이곳으로 끌려왔으나 오른쪽 엉덩이와 발등에 총상을 입고도 도망쳐 살아남았다.

당시 광양우체국 직원으로 1949년 9월 16일 경찰의 토벌 작전을 지원했던 장모씨(당시 20세)는 광양읍 화신광장에서 트럭 1대에 20명씩 2대에 실려 온 사람들이 쇠머리 벌판에서 사살되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보안기록조회 회보서와 신원기록편람 처형자 명부에는 서금식과 손영호 등이 사살된 사람으로 등재되어 있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우두마을(쇠머리)는 당시 40여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기억할 수 있도록 안내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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