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 용강리 관동마을에서는 1950년 7월, 인민군에 의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현재 관공마을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읍 용강리 관동마을에서는 1950년 7월, 인민군에 의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현재 관공마을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용강리 867 용강공원 인근에 위치했던 관동마을은 여순사건과 관련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장소다. 

1950년 7월 28일 광양군 광양읍 사곡리에 거주하던 진실규명대상자 박주원(34)이 마을 뒷산 도둑골에서 인민군에 의해 희생됐다. 

이때 박주원의 둘째 동생 박주윤도 인민군에 의해 총살됐다.

박주원은 광양 사곡리에 위치한 광산에서 근무했고, 박주윤은 용강리 관동마을에 거주하고 있었다. 박주원의 첫째 동생 박주인은 고흥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다.

1950년 7월말 경 구례 쪽에서 광양으로 인민군 선발대가 진입하면서 퇴각하던 경찰부대와 용강리 쌍구산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총소리를 듣고 용강리 관동마을 주민들이 마을 뒷산 도둑골과 절골 등지로 피난했는데, 다음날 마을로 들어온 인민군들이 도둑골에서 피난 중인 주민들을 검문했다. 

광산 근무복을 입고 관동마을로 피난 왔던 박주원이 경찰복과 유사한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로 오인받아 인민군의 검문 중 총살당했다. 박주원이 총에 맞자 동생 박주윤이 도주하다가 인민군의 총에 맞았다. 박주원, 박주윤 형제의 사망을 목격한 마을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희생 장소 인근에 매장했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용강리 관동마을은 당시 2여명의 민간인들이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기억할 수 있도록 안내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