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농업창고 인근 농가는 미군의 폭격에 의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현재 마을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인근지역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농업창고 인근 농가는 미군의 폭격에 의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현재 마을 모습(사진 위)과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인근지역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신재로 10번지 광양 농업창고 인근 인동리농가는 여순사건 당시 미군 폭격에 의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장소다. 

1950년 8월 27일 광양읍 인동리에서 미군 폭격사건으로 민간인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8~9시경 광양읍 인동리 북쪽 방향에서 전투기 1대가 날아와 폭탄 2발을 투하하고 남쪽으로 퇴각했다. 폭탄은 최모씨(1939년생)의 외갓집과 농업창고 뒷집(빈집)에 떨어졌다. 이 폭격으로 최씨의 아버지 최중기(당시 56세)와 형 최정윤(당시 16세)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또, 어머니 장송무(당시 46세)는 폭격 당일 오후에 사망했다. 

폭격으로 인해 최모씨의 외갓집 아래채가 전소됐고 마당에 큰 구덩이가 생겼으며 마당가에 있던 큰 감나무도 없어졌다. 당시 시신은 모두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주민 강모씨(당시 11세)와 박모씨의 진술에 의하면 전쟁 직후 최중기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최중기, 장송무, 최정윤이 죽었으며, 농업창고 뒤에 있는 집에도 폭탄이 떨어졌는데 그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비행기는 농업창고를 폭격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빗맞아서 최씨의 집과 농업창고 뒷집을 폭격한 것이다. 

당시 마을에는 인민군이 들어와 있었고, 말을 탄 기병들도 있었다. 

인민군들은 저녁에 학교 건물 혹은 그 근처에 말을 메어 두었다고 한다.

광양에서는 이 사건 외에 다른 폭격도 있었는데, 집 근처 논에 폭탄이 떨어진 적도 있고, 다리에도 폭탄을 투하했는데 맞지 않고 빗나갔다.

현재까지 이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미군 문서 등이 발견되지 않아 가해 부대와 폭격의 이유, 폭격 경위, 폭격의 불법성 여부 등을 알 수 없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지난해 6월 현장을 답사하며 여수·순천10·19사건 당시 미군기의 폭격을 당한 인동리 농가의 위치를 확인했다.

조사단은 농업창고 인근 인동리 농가는 현재까지 미군 폭격 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곳으로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관심을 환기하는 안내표지판 설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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