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좌익계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좌익으로 몰려 희생된 산저마을 현 모습(사진 위).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인근지역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좌익계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좌익으로 몰려 희생된 산저마을 현 모습(사진 위). 1948년 당시 미군의 항공사진에 나타난 인근지역 모습. (본문 및 사진 출처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 연구용역 보고서’)

광양시 광양읍 칠성로 71-4 매밑재(산저마을) 산저마을회관 일원은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희생이 발생한 장소다. 

1948년 11월 초 광양읍 우산리 주민 홍옥동(남, 34세)이 좌익으로 모략을 받고 경찰에 연행된후 광양시 봉강면 입구 매밑재에서 사살됐다.

당시 홍옥동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해방 후 광양읍 우산리 고향으로 돌아왔다. 

최모씨(당시 25세)의 진술에 의하면 홍옥동은 집안이 부유하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면서 당시 일부 주민들으로부터 질시를 받았다. 

이 때문에 여수·순천10·19사건이 일어날 무렵 좌익이라는 모략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여수·순천10·19사건이 발발하자 홍옥동은 일본 유학 출신으로 좌익 계열의 책을 읽었다는 이유에서 광양경찰서로 연행됐다고 한다. 

1948년 11월 초 광양읍 인근 봉강면 입구 매밑재에서 경찰에게 사살됐다. 가족들이 매밑재 인근 사람들로부터 소식을 듣고 홍옥동의 시신을 수습해갔다.

광양시 여수·순천10·19사건 유적지현황 조사단은 지난해 6월 현장을 답사하며 여수·순천10·19사건 당시 매밑재(산저마을)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진을 촬영했다.

조사단은 공권력에 의해 불법적이고 억울하게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널리 알리고, 희생자들의 해원을 위하고 기억할 수 있는 안내표지판 설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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