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僑居賦事(교거부사)

                                             교산 허균

 

        바닷가 먹을거리 서리게 남아 있고

        아욱은 텃밭에서 이슬에 젖어 있어

        우리네 먹고 사는 것 처자식이 아니지.

        海味餘霜蟹    園蔬只露葵

        해미여상해    원소지로규

        吾生本爲口    非是利妻兒

        오생본위구    비시이처아

바닷가에는 많은 물고기가 있고, 텃밭에는 각가지 종류의 채소들이 있다. 먹음직스런 것부터, 잘 자란 것부터 잡아먹고, 뜯어 먹으면 고기의 씨가 마르거나 자라는 채소가 없어진다. 한정된 공간에서 자랄 수 있는 일정량이 적자생존을 보전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바다에는 서릿게만 남아 있고, 텃밭에는 아욱만 있으니 우리 인생이 본래부터 먹고 살기 위한 것일지니 비단 처자식만 이롭게 하려고 사는 것 아니라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처자식만 이롭게 하려고 사는 것 아니라네(僑居賦事)로 번역해 본 오언율시 후구다. 작가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바닷가의 먹을거리라고는 서릿게만 남아 있고 / 텃밭 채소는 단지 이슬 젖은 아욱만 있을 뿐이네 // 우리 인생이 본래부터 먹고 살기 위한 것이려니 / 비단 처자식만 이롭게 하려고 사는 것 아니라네]이라 번역된다.

위 시제는 [타향살이로 시를 짓다]로 번역된다. 시인의 집안은 가사가 탕진되고 끝내 역모협의를 받아 처형되는 불운을 겪었던 만큼 인생 험로가 시제부터 풍긴다. 내용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역할에 대한 자기 소신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시의 전구에는 다음과 같은 시상으로 읊고 있다. [내쫒기는 것이야 예전에 정해졌었고(放逐知前定) / 공명은 이미 후세의 일이다(功名已後時) // 혜주에서 막 배불리 먹고(惠州方飽飯) / 담주 섬 수령 바둑 두는 것 구경하네(海味餘霜蟹)]라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 비법한 현실을 밝히 있다.

 이어진 후구에서는 가장이지만 시인으로서 해야 할 한마디를 내뱉는다. 바닷가의 먹을거리는 서릿게만 남아 있고, 텃밭 채소는 단지 이슬 젖은 아욱만 있을 뿐이네 라고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 때였으니 사회적인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화자는 인생이 살아가는 본래 삶이란 시상을 보인다. 우리 인생 본래 먹고 살기 위한 것이지, 처자식만 이롭게 하려고 사는 것 아니라네 라는 시상이다. 제 먹을 것 타고난다는 선현의 말을 생각키도 하는 작품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바닷가엔 서릿개 남고 텃밭 채소 아욱만이, 우리 인생 먹고살기 처자식만은 아닐지니’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학산(鶴山), 성소(惺所), 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12세 때 아버지를 잃고 시공부에 더욱 전념하였다. 학문은 유성룡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시는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이달에게 배운 후 묘체를 깨달았다.

【한자와 어구】

海味: 바닷가 먹을거리. 餘: 남아 있다. 霜蟹: 서릿개. 園蔬: 채소밭. 只: 다만. 露葵: 이슬에 젖은 아욱. // 吾生: 우리 인생. 本: 본래. 爲口: 입을 위한 것. 먹고 살기를 위하는 일. 非是: ~이 아니다. 利: 이롭게 하다. 妻兒: 처자식. 아내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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