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堂前叢竹出籬外(당전총죽출리외)

 

                                                 동계 정온

        친구여 어찌하여 금령을 두려워 않고

        울타리 벗어나서 숲속 친구 어울렸나

        주인이 더위 먹을까 주는 거야 그늘을.

        此君何不畏天禁    冒出籬閑作一林

        차군하불외천금    모출리한작일림

        應恐主人傷暍死    擁生中外供淸陰

        응공주인상갈사    옹생중외공청음

자기 합리화도 여러 가지다. 울타리 안에 심었던 나무가 울 밖이나 울담을 넘어 남의 집으로 뻗었다면 큰 실례일 수 있다. 옆집 주인이 이를 두고 어찌할지 몰라 서성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주인의 그늘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울안과 울 밖에 두루 그늘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아마도 제 주인이 심한 더위를 먹어서 죽을까 두려워하여 집 안팎에 무더기로 돋아 맑은 그늘을 주는 것이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아마도 제 주인이 더위를 먹어서 죽을까 봐서(堂前叢竹出籬外)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 친구 어찌하여 금령(禁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 울타리를 벗어나서 울창한 숲이 되었나 // 아마도 제 주인이 더위를 먹어서 죽을까 봐서 / 안팎에 무더기로 돋아 맑은 그늘을 주는 것이리]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집앞 대나무가 울타리 밖으로 돋다]로 번역된다. 광해군이 영창대군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하여, 가해자인 강화부사 정항(鄭沆)의 참수를 주장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에서 10년간 위리안치 유배생활을 했다. 제주 사람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는 일에도 노력했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정온을 제주 오현 중 한사람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시제도 그렇거니와 내용도 소박한 삶에서 끌어들이는 시적인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시인의 울타리 밖 한 떨기의 대나무를 의인화 시키고 있음이 특징이다. 이 친구 어찌하여 금령(禁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울타리를 벗어나서 울창한 숲이 되었나 라고 했다. 금령은 다른 집 울타리를 넘지 않아야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것을 뜻하겠다.

 화자는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는 시상을 발휘한다. 아마도 제 주인(시인 자신임)이 더위를 먹어서 행여나 죽을까 봐서, 집 안팎 어느 곳에나 무더기로 돋아서 맑은 그늘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무더기로 돋아난 대나무 죽순이야 그런 뜻이 아니렸만,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의 시적인 착상과 시적 구성의 한 묘미를 살며시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금령을 두려워말게 울타리 울창한 숲이네, 제 주인 더위 먹을까봐 무더기로 그늘 주니’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동계(桐溪), 고고자(鼓鼓子)이다. 그의 부친은 진사 정유명이었으며 어려서 부친에게 글공부를 익혔다. 남명 조식의 학맥을 이어받았고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1610년(광해군 2)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했다.

【한자와 어구】

此君: 이 친구. 이 사람. 何不: 어찌하여 ~하지 않다. 畏: 두려워하다. 天禁: 하늘의 금함. 冒出: 무릅쓰고 나오다. 籬閑: 울타리에서 한가롭다. 作一林: 한 숲을 만들다. // 應恐: 아마 ~을 두려워해서다. 主人: 주인. 傷暍死: 더위 먹어 죽을까 염려되다. 擁生: 무더기로 생기다. 中外: 가운데 외로. 供淸陰: 맑은 공기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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