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思故鄕(사고향)

                                    반아당 박죽서

 

        마음은 어둡고 깊은 밤 눈 내리고

        하늘 끝 먼 하늘에 기러기 사라져

        눈에서 눈물 어리려 고향집이 다가오네.

        獨倚欄干恨更長   北風吹雪夜昏黃

        독의란간한갱장   북풍취설야혼황

        數聲鴻雁遠雲外   東望故園天一方

        수성홍안원운외   동망고원천일방

여인의 심약함은 말이나 글에서 읽는다. 어디 그것이 여인에만 한정할 수 있었겠는가 만은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시를 쓰는 조선 여인의 대체적인 특징은 기녀나 소실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행여 임이 오시지 않나 규방에서 기다려지는 심회가 글 속에서 물씬거린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새벽녘까지 밤새워 기다리는 조선 여심을 자연에 비유하면서 꿈길마다 만났던 심회를 담아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보았다.

기러기가 사라져 간 먼 하늘 끝을 바라보네(思故鄕)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마음이 하도 어두워 난간에 가만히 기대서니 / 북풍에 눈이 내리고 밤도 깊어가는구나 // 기러기가 사라져 간 먼 하늘 끝을 우두커니 바라 보니 / 눈물어린 고향집이 반드시 다가와 서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함]로 번역된다. 한 여인이 있었다. 멀리 어느 곳으로 시집을 갔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십년이 가고. 삶이 고달팠다. 그때마다 고향이 그리웠다. 어느 날 저녁 마음이 울적하여 난간에 섰다. 울적한 마음처럼 북풍이 불고 어둠도 짙었던가 보다. 기러기는 멀리 사라져 간 저 하늘 끝, 흐르는 눈물 속에 고향집이 부옇게 다가왔다. 어디 비단 이 여인뿐었으랴.√ 시인은 천리타향에서 살다보니 고향이 무척이나 그립고 이 밤 따라 가고 싶었던지 시상의 그림을 그리고 말았겠다. 마음이 답답하고 하도 어두워서 난간에 가만히 기대어 보았더니, 차가운 북풍에 눈까지 내리고 밤도 깊어가는구나 라는 선경의 시 주머니를 채워본다. 시상이 채워질 수록 곁을 떠난 사람들의 얼굴도 스치면서 향수가 더욱 짙었던 모양이다.√ 화자의 후정은 더욱 다정하게 다가오면서 고향의 내음을 맡아본다. 기러기가 사라져 간 먼 하늘 끝을 우두커니 바라 보니, 눈물어린 고향집이 반듯하게 다가와 서네 라고 했다. 누구나 향수는 있는 법, 마음으로만 남아 있는 고향이겠지만, 글로 표현한 향수는 더 진해 보인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난간에 가만히 기대니 밤도 깊어 가는구나, 북쪽 기러기 바라보니 고향집이 다가서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호는 죽서(竹西), 반아당(半啞堂)으로 했다. 박은의 후손인 박종언의 서녀로, 철종 때 서울의 부사 서기보(徐箕輔:1785∼1870)의 소실로 알려지고 있다. 생몰년대 등은 확실하지 않으나 1817년에서 1851년 사이로 추정한다.

【한자와 어구】

獨倚: 홀로 (난간에) 기대다. 欄干: 난간. 恨更長: 한이 문득 길다. 北風: 북풍. 吹雪: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다. 夜昏黃: 밤이 황혼이다. 곧 밤이 깊다. // 數聲: (기러기) 울음 소리. 鴻雁: 기러기. 遠雲外: 멀리구름 밖에. 東望: 동쪽을 바라보다. 故園: 고향의 정원. 고향. 天一方: 하늘 한 방향. 하늘이 다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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