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동마을은 사라실예술촌에서 본정마을을 향해 들어가면 봉화산(烽火山)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산이 마을을 품어 안고 저수지를 끼고 있어 마을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인다. 옛 문헌에는 기록되어 전하지 않지만 예부터 봉수 관리에 따른 마을로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며, 금광 채굴지역으로 한때 부촌을 이루었다. ■봉화산과 금광이 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사라곡리(沙羅谷里)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사라곡면(沙羅谷面)에 속하였고 1789년에는 사곡면 본정촌(本井村) 지역이었다. 양·임·하씨가
신성마을은 광양읍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광양읍 5일장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우시장 사거리에서 시작하는 백운로, 목성우체국 앞을 지나는 매천로, 광양농협을 지나는 신재로 사이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마치 삼각형의 형태를 이룬다. 여기에 시외버스공용정류장, 광양경찰서읍내지구대, 유당공원까지 연결되면서 광양읍의 중심지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새로운 가상걸신성마을은 행정구역상 1979년까지는 개성마을에 속해오다가 1980. 1. 12일 개성마을에서 분리하여 행정상 별도의 마을이 되었다. 1987.1.1. 기준에 의하면 신성마을은 목
매년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면 전국의 상춘객들이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로 모이기 시작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가 이 마을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면서 마을 전체가 온통 하얗게 뒤덮여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섬진마을이 매화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95년 3월 청매실농원이 주관한 제1회 청매실농원 매화축제가 열리면서다. 이때부터 매실의 고장이 바로 광양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었으며, 전국 각지의 상춘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 매년 매화축제가 열리는 섬진마을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광양 매실을 알리는 마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광양에 터를 잡고, 세계최고의 자동차강판 전문제철소로 우뚝 서기까지는 광양시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응원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포스코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기업시민을 경영방침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면서 지역과 상생을 꾀하고 있다.이러한 포스코의 입지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일부 지역 단체들의 목소리가 포스코를 향해 날이 서 있는 것에 대해 지역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염려가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포스코가 5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산한 10억톤이 넘는 조강을 우리가 직
광양읍 마로초등학교 정문 옆에 위치한 아담한 컨테이너 건물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인 ‘마로니에뜰’이다.이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일본 후쿠시마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사쿠마 이즈미씨와 그녀의 남편 고찬희씨다.이들 부부는 지난 2004년 모 종교단체를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후 2005년 광양에 정착해 살고 있다. 전남 순천 출신인 고찬희씨는 이즈미씨와 결혼할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었다. 원래 수산계열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씨는 학교 졸업 후 참치잡이 어선의 항해사로 3년여 정도를 생활했다.참치잡이 배 타다 장비 배워
섬거(蟾居)마을은 진상면사무소에서 서북방향으로 약 300m만 올라가면 보이는 마을이다.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마을의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상면에서 가장 큰 마을인 섬거마을은 예전부터 그 위상이 남달랐다. 옛 문헌(지도)을 기록할 때 ‘진상면’ 표기를 생략할지언정 ‘섬거마을’은 꼭 표기했으며, “진상면장을 할래? 섬거이장을 할래?”라고 물으면 “섬거이장을 한다”는 말도 생겨날 정도였다. 그만큼 섬거마을이 진상면에서 중심 권역이었고 수많은 역사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마을형성 및 지명유래섬거(蟾居)마을은 약 720
광영동의 도촌(渡村)마을은 마을이름에서나루터를 연상케 한다. 1789년경에 광양현 옥곡면 광포촌(廣浦村)지역인 것으로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어 전하는데 여기서도 광포촌의 ‘포(浦)자가 강가나 바닷가를 뜻하고 있어 나루터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현재의 도촌마을을 생각하면 도촌선착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마을유래도촌마을은 1780년 쯤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했다고 전해오나 문헌으로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호도에 16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차동마을은 진상면 입암마을에서 진월면으로 통하는 고개를 넘어서면 바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국가주요문헌에는 차동마을을 차의포소(車依浦所)라 기록되어 전하는데, 차의포(車依浦)라는 이름은 마을 뒷산 고개와 관련이 있으며, 1872년 제작된 광양현 지도에서 차동마을이 차의포(車依浦)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차동마을의 유래차동마을은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그 당시 마을 연혁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570년 전 안동권씨가 처음 입촌
궁기마을은 태인동 삼봉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남쪽에는 삼봉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있으며, 그 산등성이 너머의 용지마을과 맞닿아 있다. 궁기(宮基)를 ‘궁터’(궁땅)라고도 하는데 이를 역사문헌으로 살피면 1840년에 편찬한 ‘호남도서도’에 대안도(大安島)가 궁장으로 표기되었고, 옥곡면 태인도 지역의 해태((海笞) 및 진포세(鎭浦稅)를 적은 『명례궁수세절목』이란 문헌에 태인도가 옛날 궁땅이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전우치전설과 땅이름 이 마을 원주민들은 전우치가 궁(宮)을 짓고 살았으므로 궁터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
옥곡 의암(衣岩)마을은 1789년경에는 옥곡면 신진촌(新津村)지역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신진리(新津里), 금촌리(錦村里), 신기리(新基里) 일부지역과 함께 병합해 신금리(新錦里)에 속하게 됐다. 1987. 1. 1기준(광양군행정구역일람)에 의하면 광양군 옥곡면 신금리(법정리)에 속해 행정리상 신금5구가 되어 상의(上衣), 하의(下衣), 월앙(月仰)의 자연마을이 있었고, 현재는 광양시 옥곡면 신금리(법정리)에 속해 행정리상 의암(衣岩)이라 한다.■마을형성과 지명유래의암마을은 1687년경 진원박씨(珍
불로마을은 오늘날 광양시 행정의 중심지다. 이 마을에는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 설치, 동광양시에서 광양시로 승격 등 대대적인 행정구역 변경에 따른 영향으로 시청사를 비롯한 각급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특히 이 지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옛 마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찾아 볼 수 없으며, 아파트 등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불로(不老)∙행정(杏亭)∙세동(細洞) 마을로 구성본래 불로는 자연마을로 불로(不老)·행정(杏亭)·세동(細洞)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광양현 동면(東面) 골약리(骨若里)지역으로 추정되
옥룡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가다보면 하얀 건물의 예배당이 눈에 들어온다. 예배당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이 대방교회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실 대방교회는 현재의 대방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마을 안쪽(용곡리 349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한 대방교회가 어느덧 110년의 세월을 넘기고 지금의 자리에서 대방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대방의 의미대방마을은 대방교회를 지나 대방교(大方橋)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대방교를 건너기 전 대방마을의 보호수와 대방마을을 지칭하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대방마을은 본래
봉강면 석사리 서석(西石)마을은 구석기시대 후기(BC 약 8000년) 유물이 산포되어 있는 마을로 그 역사를 추산하게 되면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광양고을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광양 고을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문헌상 기록으로 마을연혁을 살펴보면 1600년경 광양현 북면 며내리(旀內里)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이후에는 며내면(旀內面)에 속했다. 1789년 경에는 며내면 석현촌(石峴村) 지역이었으며,
“종업원이 주인인 회사이니 만큼 새해에는 종업원 복리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 직원 모두가 지역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회사로 만들고, 회사의 경쟁력을 높여 보다 좋은 회사로 만들어 가족 친화적인 회사, 지역에 기여하는 회사로 만들겠습니다.”직원 모두가 회사의 주주로 구성된 주식회사 다원 하이텍의 이수남 사장의 새해 포부는 남다르다. 광양에 입주해 있는 수많은 기업 중 다원하이텍은 지역 최초의 종업원 지주회사다. 회사의 주인이 종업원인 최초의 회사인 셈이다. 포
2021년 신축년(辛丑年)은 육십간지 중 38번째 해로 ‘하얀 소의 해’이다. 십간 중 여덟 번째인 신(辛)이 색으로 보면 흰색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소를 가족으로 여기며 소중히 해왔으며, 특히 흰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축년에는 흰 소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며, 시민 새해소망을 들어본다. “사고 없는 안전한 한해 되길”“지난해에는 유난히 사고가 많이 발생했는데 올해에는 사고로부터 안전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산저(山底)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 우장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우장면에 속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12년 행정구역개편 이전에 광양군 우장면 산저리라 했고 행정구역 개편 후인 1917년에는 광양군 광양면 칠성리에 포함되기도 했다. 지금은 광양읍 우산리(牛山里)에 속하여 산저마을로 불리고 있다. ■ 휴식과 문화공간의 마을마을 이름을 산저(山底)로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이름에서 암시하듯 마을 뒤쪽에 위치한 산인 우산(牛山)아래 삶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를 담고 있어서다. 우장면은 우산 산자락에서부터 장내(藏
도움의 손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봉사의 원천…봉사하는 삶 아이들도 자연스레 받아들여평창강이 유유히 흐르는 강원도 평창 출신으로 지난 1991년 12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입사하면서 광양에 정착한 장상복(51) 과장과 부인 신은희(49)씨는 소문난 봉사자 부부다.광양제철소 제선부 원료공장에서 근무하는 장상복 과장은 부인과 함께 사내외 봉사단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광양시 금호동에 거주하는 장상복 과장의 봉사활동 시간은 6,017시간, 부인 신은희씨의 봉사활동 시간은 7,300시간에 달한다. 부부가 무려 1만3,317시
장애인시설 봉사로 시작해 도움 필요한 곳곳에 사랑의 손길 내밀어…가족 응원이 가장 큰 힘한 개인이 1만시간의 봉사활동 기록을 달성하는데는 얼마나 걸릴까? 하루 평균 4시간씩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다고 가정하면, 1만시간의 봉사활동을 하는데는 무려 2,500일이 걸린다. 이는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여해도 6년이 넘게 걸린다. 그러기에 봉사활동 1만시간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넘볼 수 없다. 그런데, 광양에는 이러한 기록을 넘어서는 사람이 있다.광양시 광양읍에 거주하는 김융하씨의 자원
5개 봉사단체 대표로 활동…전문적인 봉사 위해 도배강습 받고 도배재능봉사단 발족시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도배재능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최광석 단장은 지역내 봉사단체에는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도배재능봉사단을 비롯해 지역내 5개 자원봉사단체의 회장이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바쁜 일상 속에서도 6,778시간의 자원봉사 기록을 갖고 있는 최 단장은 부인 권치숙씨가 4,011시간, 자녀들이 1,034시간 등 가족 합계 1만1,823시간의 자원봉사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봉사 자체가 일상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 통해 가족애 다지고, 활동 마치면 행복하고 마음 따뜻해져 광양제철소 제강부 제2제강공장에 근무하는 김정윤 과장의 가족들은 ‘봉사의 달인’으로 불린다.전북 군산 출신으로 지난 1991년 포스코에 입사한 김 과장은 본인과 부인, 자녀들의 봉사활동 시간이 1만5,518시간에 달한다.광양지역 6개 사회복지시설과 연계해 꾸준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오고 있는 김 과장은 본인의 봉사시간이 6,763시간, 부인 채정희씨의 봉사시간이 6,822시간, 두 자녀의 봉사시간이 1,93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