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家(전가)[1] 연암 박지원 늙은이 참새 지켜 비탈길에 앉았는데 개꼬리 수수 이삭에 참새가 매달리고 시골집 모두 나가고 사립문이 닫혔네. 翁老守雀坐南陂 粟拖狗尾黃雀垂 옹로수작좌남피 속타구미황작수 長男中男皆出田 家田盡日晝掩扉 장남중남개출전 가전진일주엄비한가하기 그지없는 농촌 풍경은 1970년대 이후에 사라지고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가한 그 농촌에 좋았고, 대가족제도 하에서 20여명이 넘는 식구가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었던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물동이 이고 가는 아낙의 서툰 걸음마에 강
조선 왕조는 초기부터 왕명출납과 관계된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승정원일기다. 임금의 행적에 관한 글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그 내용 중에는 시시콜콜한 일들도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태종(이방원)은 어느 날 사냥하는 도중에 말에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말이 움직이는 상태에서 떨어졌는지 아니면 방심하다 서 있는 말에서 떨어졌는지 그것까지 따질 계제는 아니다. 말에서 떨어진 뒤 태종의 반응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말에서 떨어진 뒤 일성이 “이 사실을 사관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측근들에게 입단속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松京醉詠(송경취영) 기봉 백광홍 만월대에 가에서는 술잔을 높이 들고 오백 년 고려왕조 피리소리 구슬픈데 궁전은 잡초에 묻혀 누가 알리 그 때를. 滿月臺邊把一盃 半千基業笛聲哀 만월대변파일배 반천기업적성애 誰人認廳當時事 宮殿荒凉但草萊 수인인청당시사 궁전황량단초래질풍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외세, 신진세력에 의한 개혁의 진풍경 속에 고려 말의 세태는 요동쳤다. 특히 위화도 회군 이후에 왕조는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백년 도읍지를 뒤로 하고 개경이 폐허된 이후 황량하기 그지없이 그저 잡초에 묻혀 버렸다. 이런 역사의 단면을 잘 알고
雙溪方丈(쌍계방장) 휴정 서산대사 갯 마루 흰 구름에 동쪽 달빛 밝으며 꽃비는 내려오고 스님은 앉아 있는데 나그네 산새 소리에 잠이 들어 있구나. 白雲前後嶺 明月東西溪 백운전후령 명월동서계 僧坐落花雨 客眠山鳥啼 승좌락화우 객면산조제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워 나리의 운명이 위기에 있을 때 구국을 했던 이들이 많다. 임금은 그의 무훈을 높이 사서 정승을 내렸지만, 3일만에 도중하차했으니 그를 가리켜 삼일정승이라고 부른다. 전쟁의 후유증은 나라 안팎에 조용하지를 않아 일본 특사로도 다녀 오기도 했지만 조용히 쌍계사 방장스님을 찾기도 했던
題茅齋(제모재) 유일재 김언기 달빛은 빈 처마에 책상 밝게 비추고 연기는 성긴 문에 푸름에 이어질 때 썰렁함 오히려 즐겨 마음속이 한가해. 月入虛簷明照榻 烟生疎戶翠連山 월입허첨명조탑 연생소호취련산 蕭條雖甚吾猶樂 爲是身心兩得閒 소조수심오유악 위시신심량득한인적이 끊긴 밤이 깊어질수록 적막함은 더한다. 오히려 적막한 밤이 되면 온통 자연이 친구가 되면서 한가하고 느긋함을 느낀다. 찬바람이 엄습해 온다고 한다. 썰렁한 기분이 감돈다. 이럴 때는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이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로움 속의 즐거움
광양 백운산은 광양시를 상징하는 영산으로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지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오고 있는 해발 1222m의 뛰어난 풍수지리와 봉황, 여우, 돼지 등 삼정의 기(氣)와 성불, 어치, 금천, 동곡 등 4대 계곡을 거느린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자 식물의 보고이다.광양 백운산 자락에는 천년의 숲길, 섬진강 매화길, 외갓집 가는 길 등 둘레둘레 걸을 수 있는 9개 코스, 총 126.36km의 특색있는 둘레길이 잘 정리되어 전국에서 수많은 등산객이 찾아오고 있다.필자는 광양시의 자랑이고 어머니 품 같
夜吟(야음) 호연재 김씨 삶이란 석자인 걸 시린 칼에 불과한데 마음은 한 점 등에 붙어사는 신세여라 서러워 한 해 저무니 흰 머리가 더해가. 生涯三尺劍 心事一懸燈 생애삼척검 심사일현등 惆悵年光暮 衰毛歲又增 추창연광모 쇠모세우증낮보다는 밤이 되면 무언가 허전해진다. 오늘 하루도 반성하고, 지난날도 회상한다. 걸어왔던 발자취를 낱낱이 회상하다 보면 허무함과 잘못됨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주섬주섬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후회덩어리이지만 삶이란 굴레에선 나의 차곡차곡한 역사이자 삶의 역경이다. 그래서 인생의 삶이란 시린 칼에 불과하다고
1990년대 초반,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자동차 뒷문에 붙이고 다니는 차량들이 거리를 채운 적이 있었다. 문제에 대해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이 먼저 반성하자는 운동이었다. 천주교에서 시작된 ‘내탓이오’ 운동은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남을 탓하기 보다 자신부터 반성하자는 취지의 운동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내탓이오’라는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닌다고 해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누구나 남을 탓하기 전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구로서는 유효했다고 본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나의 큰 탓
폭염(暴炎)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의 끝자락에 있는 필자는 한 여름 땡볕에도 부모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했다. 유례없는 장마나 폭우가 쏟아진 뒤에는 농사일이 산더미처럼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면 삼복더위에도 부모님은 논밭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필자도 이렇게 사는 삶이 근면이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삶을 지향하며 살기도 했다. 옛말에도 “일근무난사(一勤無難事)”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선대(先代)들도 근면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 같은 폭염에 무리하게
國島(국도) 봉래 양사언 화려한 누각은 자주 빛을 쏟아 내며 구름길을 따라서 신선들이 내려오고 산들은 세상이 싫어 바다가로 날아드네. 金屋樓臺拂紫煙 濯龍雲路下群仙 김옥루대불자연 탁룡운로하군선 靑山亦厭人間世 飛入滄溟萬里天 청산역염인간세 비입창명만리천이국의 정취라고 한다. 해운대 앞바다에서 보면 눈썹같이 보인 대마도가 남의 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까운 나라이지만, 막상 이국에 가면 자연과 공기맛까지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시인도 아마 그랬던 모양이다. 자연 뿐이겠는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사람들을 만
2026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에 이른다는 통계를 보았다.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되는 것을 전제한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접하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통계도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일말의 불안감마저 스멀거린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령사회는 출산율 저하와도 밀접하게 연동되
大人說(대인설) 토정 이지함 귀함으로 벼슬 않는 더 귀함은 없는 것 부유하여 욕심 않는 더 부유는 없는 것 강함은 다투지 않는 것 현명한 것 그것이. 貴莫貴於不爵 富莫富於不欲 귀막귀어불작 부막부어불욕 强莫强於不爭 靈莫靈於不知 강막강어불쟁 령막령어불지서울 오천에 사는 이씨는 대대로 부자였는데, 증손 현손에 이르러 가산을 탕진하고 홍씨에게 집을 팔았다. 대청 기둥 하나가 기울어져 무너지자 홍씨가 수리하던 중 은자 삼천 냥이 나왔다. 이씨의 조상이 간직하였던 돈이었다. 홍씨가 이씨를 불러 이를 주려고 하자, 이씨가 사양했다. 이렇게 홍씨
2003년 7월 23일, 광양제일신문이라는 제호로 창간호를 내며 광양시민과 인연을 맺은 광양만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창간 20년을 맞는 2023년 7월은 극한의 호우 가운데 서 있다. 연일 산사태로 인한 인명피해 소식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고, 인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지하차도의 참사가 가슴 아프게 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상시적으로 겪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비로 인한 피해를 마냥 천재지변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게 됐다. 철저한 준비와 대비만이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늘 교훈은 사후에 떠올
고정선(시인, 전라남도 지정 명예 예술인) 도선(道詵國師)의 눈빛과신재(新齋 崔山斗)의 지성과매천(梅泉 黃玹)의 소리를 품은 광양만 신문남녘 바다에 울려온 정필(正筆) 20년무적(霧笛)의 소리를 다시 듣는다누구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바른 귀로 바른 소리를 들을 수 있는바른 입으로 바른말을 할 수 있는그 피안(彼岸)을 향한 힘찬 순항(順航)을우리는 보고 있었다광양만 시대의 첨병(尖兵)이 되어무한 경쟁 속에서도 가슴을 열고차고 투명한 이성의 힘으로잉걸불의 곁을 지킨민심의 가운데에 서서바른길이라면 서슴없이 가슴 내밀어어울려 함께 나가며
人生(인생) 하서 김인후 어디로 좇아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오고감 일정하게 자취가 없어서라 공연한 백년 계획에 인생만이 아득해.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래종하처래 거향하처거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計 거래무정종 유유백년계수많은 선현들은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물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철학공부를 했고 인생 공부에 전념했다. 그렇지만 정답을 얻지 못했다. 시작점과 종착점이 어디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나 진시황을 비롯해서 천하를 호령했던 자나 사서인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정답을 찾지 못한 채 봇짐을 싸들고 갔다.
평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고 좋아한다. 선대(先代)의 지혜가 담겨있는 말과 뜻을 잘 새겨두면 21세기 첨단사회를 사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비슷한 말로 법고창신(法故創新)이라는 말도 있다. 선대의 슬기가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경우로 고사성어 및 사자성어가 더 실감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물론 우리의 말과 글에 담겨있는 뜻도 소중하고 웅숭깊지만 간혹 사자성어가 더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종종 있다는 얘기다. 담겨진 뜻도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될 뿐 아니라 기억에 오랫동
德山卜居(덕산복거) 남명 조식 하늘이 가까워서 봄 산에 집을 지었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은하가 십리나 되니 배불리고 남겠지.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춘산저처무방초 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백수귀래하물식 은하십리끽유여하늘을 지붕 삼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어느 지점에 정착하여 영원한 자기 안식처를 잡는 경우가 많다. 나이들수록 더하리.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살겠다는 자기 의지다. 낯선 곳도 정이 들고, 이웃 사촌이라고 했던가 모든 이웃이 사해동포다. 이사를 오면 떡을 해서 이웃에 돌리는 아름다운 풍
義州(의주) 퇴계 이황 구름기운 쓸쓸한데 지는 해 낮아지고 산성 성문 닫히기를 앉아서 기다리니 뿔피리 은은한 소리 서쪽으로 지나가. 龍淵雲氣晩凄凄 鶻岫磨空白日低 용연운기만처처 골수마공백일저 坐待山城門欲閉 角聲吹度大江西 좌대산성문욕폐 각성취도대강서의주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시다. 중국으로 사신으로 갈 때는 이곳을 거쳐서 압록강을 건넜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국경지방인 이곳까지 피신을 왔다. 이곳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위화도에 있어 우리의 역사의 한 장도 알려준다. 최근에 압록강에 더 가까운 국경 부근에 신의주가 생겨 중국 단
2026년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에 이른다는 통계를 보았다.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접하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고령사회 진입 속도가 제일 빠르다는 통계도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일말의 불안감마저 스멀거린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령사회는 출산율 저하와도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미래를
題路傍松(제로방송) 충암 김정 바람 소리 불어가니 그림자가 성글구나 바람 소리 곧은 뿌리 샘 아래 뻗어가니 차가운 눈과 서리도 높은 품격 털지 못해. 海風吹去悲聲壯 山月高來瘦影疎 해풍취거비성장 산월고래수영소 賴有直根泉下到 雪霜標格未全除 뇌유직근천하도 설상표격미전제바람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태풍을 몰고 오고, 모진 비바람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서 있는 나무가 쓰러지고 집이 무너지는 상황까지도 연상하기 때문이겠다. 바람이 창문을 두들기면 도둑이라도 들어 올 느낌을 받는다. 나들이도 할 수 없고, 꼼짝